—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가장 공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곳우리는 가족을 너무 익숙하게 부른다.가족은 쉬어야 하는 곳,편해야 하는 곳,아무 생각 없이 돌아가도 되는 곳.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살아보면가족은 결코 단순한 쉼터만은 아니다.가족은 매일같이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나는 어떤 어른으로 말하고 있는가권력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갈등은 회피되고 있는가, 다뤄지고 있는가그래서 나는 점점가족을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가족은 ‘철학적 실험실’이다.1. 가족은 이론 없는 철학이 실행되는 곳이다철학은 보통 책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개념과 문장과 사유의 역사.하지만 가족 안에서의 철학은 다르다.여기에는 준비된 답이 없다.매일의 상황이 문제이고,선택이 곧 논증이다.화가 난 아이 앞에서 어떤 말을 고를지실수한 가족을 어떻..
— 아이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가장 단순한 방법요즘 아이의 공부를 지켜보고 있으면가끔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열심히 외우고, 문제를 많이 풀고, 정답을 열정적으로 쫓아가는데정작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물으면아이의 눈빛이 잠시 멈추는 순간이 찾아옵니다.저는 그 순간이 늘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왜냐하면 지식은 있는데 사고는 멈춰 있는 상태,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는 배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저 역시 워킹맘으로 살면서일에서도, 육아에서도 자꾸 느낍니다.정답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묻는 힘이 있는 사람이 결국 스스로 길을 만든다는 것을요.스토아 철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지혜는 해답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데서 시작된다.” — 에픽테토스그..
더 많은 ‘일’을 하기보다, 더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법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나는 오늘도 뭔가를 해내지 못하면 스스로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끼는 건 아닐까?할 일을 끝내야 마음이 놓이고,누군가의 인정이나 결과가 나와 하루의 평가 기준이 되고,쉬는 시간에도 “이러고 있어도 되나?”라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고.우리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했는가’가 사람이 된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나는 내가 해낸 성과를 나라고 착각하고,잠시 멈춰 있을 때조차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 실망하거나 초조해합니다.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나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그저 ‘존재하는 나’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사람일까?■ 성취 중심의 나 — 끝없이 달려왔던 시간우리는 오랜 세월 해내야만 존재 의미가 증명..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엄마라는 정체성은, 아마도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사는 사람’에 가장 가까울지 모릅니다. 회사에서의 하루는 시스템과 성과로 측정되고, 집에서의 하루는 사랑과 책임으로 기준이 만들어지죠.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매일 ‘일’과 ‘육아’라는 두 개의 커다란 파도를 번갈아 헤엄칩니다. 오전엔 직장이라는 물속에서 숨을 참고 버티고, 퇴근 후엔 다시 엄마의 이름으로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나올 틈도 없이, 실은 숨 쉴 틈조차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그렇다 보니, ‘멈춘다’는 말은 우리에게 이상하게도 죄책감을 동반합니다.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잠시 쉬는 동안에도 머릿속 체크리스트는 줄지 않습니다.현관 앞에 쌓인 배달 박스, 밀린 설거지, 내일 아이가 입을 옷, 체육복, 알림장..
1. 방향이 없는 배는 바람에 흔들린다육아는 바다와 같다. 잔잔한 날도 있지만, 예고 없이 몰아치는 파도도 있다.밤새 울어대는 아기, 예민한 사춘기 아이, 예기치 않은 학교 문제, 혹은 비교의 늪에 빠져드는 나 자신.이 바다 위에서 우리는 늘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품고 흔들린다.그런데 어떤 부모는 같은 파도를 만나도 덜 흔들린다.그 차이는 철학이다.철학이란 거창한 지식이 아니다.내가 아이를 왜 이렇게 키우려 하는지,무엇이 ‘좋은 삶’이라고 믿는지,어떤 인간으로 자라길 바라는지를스스로에게 묻고 답해본 사람만이 세울 수 있는 삶의 기준이다.방향이 있는 배는 파도에 흔들려도 전복되지 않는다.양육의 철학은 바로 그 방향의 나침반이다.2. 철학이 없을 때 생기는 혼란철학이 없는 양육은 외부 기준에 끌..
1. 프롤로그: 자연은 아이의 첫 번째 철학 교과서우리가 철학이라고 하면 보통 두꺼운 책, 고대 그리스의 현자들, 혹은 머리 아픈 추상적인 개념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철학은 원래 ‘삶을 잘 사는 지혜를 사랑하는 태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지혜는 먼 곳에 있지 않다.아이와 산책하며 마주치는 작은 풀 한 포기, 개미 한 마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잎에서도 철학은 살아 있다.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적었다.“자연을 보라.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질서 안에서 우리는 배운다.”엄마가 아이와 함께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철학 수업이 된다.2. 왜 자연 관찰이 철학적인가?자연을 관찰하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 호기심을 채우는 일..
1. 프롤로그: “엄마는 완벽해야 한다”는 환상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좋은 엄마는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존재한다.아이 도시락 반찬이 조금 부실해도, 숙제 검사에 놓친 부분이 있어도, 혹은 직장과 양육 사이에서 균형을 놓쳐도, 엄마들은 스스로를 ‘실패한 엄마’로 낙인찍곤 한다.하지만 아이가 실제로 배우는 건 완벽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아이에게 더 중요한 건 엄마도 실패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과 심리학이 만난다.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인간은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넘어짐이 끝이 아니라, 일어남이 인간됨이다.”아이 앞에서 실패를 숨기려 하기보다, 그 실패 속에서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는 “실패..
1. 프롤로그: 고전은 왜 여전히 유효할까?부모로서 우리는 늘 고민한다.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혀야 할까?”시중에는 수천 권의 동화책과 학습만화, 자기계발식 어린이 책이 넘쳐난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는 책들이 있다. 바로 고전(古典)이다.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다.고전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마음과 사회를 비추어 온 거울이다.고전 속에는 인간의 본성, 삶의 지혜, 사회의 갈등, 사랑과 용기, 불안과 희망 같은본질적인 주제가 담겨 있다.하지만 문제는 아이에게 고전을 어떻게 읽힐 것인가?이다.너무 어렵게 던져주면 흥미를 잃고, 너무 단순화하면 깊이가 사라진다.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수준에 맞는 철학 동화 고르기”이다.2. 고전 읽기의 철학적 의미스토아 철학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