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존재에서 침묵하는 존재로❞아이는 질문을 통해 세상과 접속한다.표정 없는 사물에게 이름을 달고, 이유 없는 감정 앞에 이름표를 붙이며, 불편한 감각을 말로 풀어낸다.질문은 단지 알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다.그러나 질문이 깊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그 순간은 단지 ‘묻지 않는 시기’가 아니라아이의 사고가 잠시 멈춘 상태로 진입한 시간이다.이 글은 질문이 멈추는 순간들을 하나씩 살펴보며그 안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1) 질문이 자주 잘릴 때 — “다음에”, “나중에”아이의 질문이 어른 사이에서 자주 끊긴다.정답이 아니라 탐색의 말이 요구되는 순간에도어른은 타이밍을 이유로 질문을 멈추게 한다.“지금 얘기할 때가 아니야.”“그건 조금 크면 알게 돼.”“그냥 ..
— 책임을 인정하는 어른의 태도가 아이의 양심을 만든다부모는 사과를 망설인다.아이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일이권위를 무너뜨릴까 봐,질서를 흐트러뜨릴까 봐,아이를 버릇없게 만들까 봐.그래서 많은 부모는사과 대신 설명을 선택한다.“그럴 수밖에 없었어.”“엄마도 사람이잖아.”“너를 위해서 그랬어.”이 말들은 사과처럼 들리지만사과가 아니다.그 말들 속에는책임의 인정이 빠져 있다.이 글은 말한다.아이 앞에서의 사과는약함이 아니라 책임의 언어라고.1. 사과는 관계의 힘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부모가 사과를 두려워하는 이유는관계의 위계가 흔들릴까 봐서다.하지만 아이가 신뢰하는 것은완벽한 어른이 아니라일관된 어른이다.실수했을 때 인정하고,상처를 줬다면 사과하는 어른.이 일관성은권위를 약화시키지 않는다.오히려권위의 정당성을 만..
— 감정을 억누르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윤리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화가 나서 그랬어.”“그땐 감정이 앞섰지.”마치 화가 났다는 사실이말의 방향과 상처를어느 정도 정당화해 주는 것처럼.하지만 아이 앞에서의 분노는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부모가 화가 난 상태로 말을 건네는 순간,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은논리도, 훈육도, 설명도 아니다.감정이 통제되지 않을 때말은 무기가 된다는 사실이 글은화를 느끼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그것은 불가능하고,또 인간적이지도 않다.이 글이 말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화가 난 상태에서는 말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1. 분노는 말보다 빠르게 전달된다아이들은 어른의 말을문장으로 먼저 이해하지 않는다.목소리의 높낮이호흡의 속도얼굴의 근육이 모든 것을 먼저 ..
— 말로 이기지 않겠다는 결심이 아이의 사고를 자라게 할 때부모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설명한다.왜 그래야 하는지, 왜 그러면 안 되는지, 왜 지금은 안 되고 나중이어야 하는지.부모의 하루는 사실상 끝없는 설득의 연속이다.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사회 규범을 가르치기 위해서,실수를 줄여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부모는 아이의 말 위에 자신의 말을 덧붙인다.그런데 어느 순간,우리는 문득 깨닫는다.아이가 말을 잘 듣는 것 같지만생각은 점점 말라가고 있다는 느낌을.이 질문에서 이 글은 시작된다.설득받으며 자란 아이는과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어른이 될까? 1. 설득은 언제나 힘의 구조를 전제로 한다설득은 중립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그 안에는 분명한 힘의 비대칭이 존재한다.부모는 경험을 가지고 있..
— 이해하려는 태도가 아이의 사고를 자라게 하는 순간부모는 아이의 말을 자주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누구와 다퉜는지,왜 울었는지.하지만 ‘듣는다’는 말의 의미를조금 더 들여다보면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나는 정말 끝까지 듣고 있는가?아니면 중간에 이미 판단하고 있는가?아이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는 것은단순한 예의나 양육 기술이 아니다.그것은아이의 존재를 하나의 사고하는 주체로인정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1. 아이의 말은 늘 미완성으로 시작된다아이의 말은 어른처럼 정리되어 있지 않다.앞뒤가 뒤섞이고,중요한 부분은 빠지고,사소한 감정이 과장되기도 한다.그래서 어른은 쉽게 개입한다.“그러니까 네 말은 이거잖아.”“결론부터 말해.”하지만 이 개입은아이의 말을 도와주는 듯 보이..
— 결과보다 태도를 남기는 부모의 결정들 부모가 된 이후,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기준으로선택을 하게 된다.예전에는나에게 유리한가효율적인가손해를 보지 않는가를 먼저 따졌다면,아이 앞에 선 이후의 선택에는하나의 질문이 더해진다.이 선택을아이가 나중에 보아도 괜찮을까?‘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이란도덕 교과서적인 결단이 아니다.그것은 매일같이 반복되는아주 사소한 결정들 속에서조용히 드러난다.1.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많은 부모가‘부끄럽지 않음’을완벽함과 혼동한다.항상 옳은 말,늘 침착한 태도,흔들리지 않는 판단.하지만 아이에게 부끄러운 것은실수가 아니라실수를 다루는 방식이다.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책임을 회피하는 말힘으로 덮어버리는 결정아이에게 남는 것은결과가 아니라그 과정에서 드러난..
— 아이를 따르게 만드는 힘과, 아이를 멈추게 만드는 힘 사이에서부모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한다.“아이에게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되지 않을까?”“그래도 부모로서의 권위는 필요하지 않을까?”그래서 우리는 종종‘권위’와 ‘권력’을 같은 것으로 착각한다.하지만 이 둘은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여도아이에게 남기는 흔적은 전혀 다르다.아이를 따르게 만드는 힘과아이를 멈추게 만드는 힘.그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아이의 성격과 세계관을 만든다.1. 권위는 관계에서 생기고, 권력은 위치에서 생긴다권력적인 부모는자신의 위치에서 힘을 얻는다.“내가 엄마니까.”“아빠 말이면 이유 없어.”이 말의 힘은부모라는 지위에서 나온다.반면 권위 있는 부모의 힘은관계에서 축적된다.아이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낀 경험일관되게 지켜진 기준말..
— 불안한 부모의 뒷모습이 아이에게 남기는 것들부모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아이 앞에서는 흔들리지 말아야지.”“불안한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지.”그래서 우리는감정을 정리한 척하고,괜찮은 얼굴을 하고,아이 앞에서는 단단한 어른인 양 선다.하지만 아이는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게어른의 상태를 읽는다.아이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어른이 흔들리는가 아닌가가 아니라,흔들릴 때 어떻게 존재하는가. 1. 아이는 말보다 분위기를 먼저 읽는다아이에게 어른의 흔들림은설명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말수가 줄어든 날웃음이 사라진 저녁사소한 일에 예민해진 반응아이의 몸은이 변화를 먼저 감지한다.아이에게 어른은정서적 환경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아이는이렇게 배우기 시작한다.지금은 조심해야 하는 시간인가?나의 감정은 안전한가? 2. 숨겨진 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