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수의 시대에서 ‘깊이’의 시대로 건너가기아이의 공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종종 “얼마나 잘하느냐”에 집중한다.점수, 등수, 속도, 학원 수준.하지만 이 모든 비교의 렌즈를 잠시 걷어내고 나면아이의 배움 속에는 아주 작은 빛이 있다.그 빛은 성적표에 적히지 않는다.하지만 조용히, 숨 쉬듯 자라고 있다.바로 ‘몰입’이라는 힘이다.요즘 나는 아이의 성취보다아이의 ‘집중하는 표정’을 더 신뢰하게 됐다.왜냐하면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의 핵심이그 몰입의 영역에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경쟁은 비교를 낳지만, 몰입은 성장을 낳는다경쟁은 외부를 바라보게 한다.남보다 더 빨리더 많이더 높은 점수를뒤처지지 않기 위해이런 마음이 쌓이면아이는 ‘불안 기반의 학습’을 하게 된다.반대로 몰입은..
— 질문하는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아이의 눈빛은 종종 반짝인다.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낯선 장난감을 분해할 때,비 오는 날 창문에 흐르는 물길을 끝까지 따라가 볼 때.그 호기심은 자연스레 태어난다.하지만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한다.그리고 그 변화의 이면에는 종종 어른의 말습관이 있다.우리는 아이가 궁금한 것을 계속 묻거나 늘어지는 탐색을 시작할 때,피곤함과 조급함이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그만해. 더럽잖아.”“그건 위험해. 건드리지 마.”“그걸 왜 해? 할 필요 없어.”“그냥 그렇게 하라니까, 묻지 말고.”물론 안전과 질서가 필요하다.하지만 이 말들 속에서 아이는 아주 작은 메시지를 받는다.— 궁금해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그리고 마음이 닫히기 시작한다.✨ 호기심은 아이의 학습 본능이다아..
—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존재로서아이에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해본 적이 있다.“좋은 대학 가려고?”“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어른이 되면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그런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공부의 이유가 불안의 반대편에 있는 생존만이라면, 우리는 공부를 사랑할 수 있을까?지식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보다, 누군가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한 방패가 되어버린다면공부는 아이에게 짐이 되고, 삶은 경쟁이 되어버릴 것이다.나는 요즘, 스토아 철학을 읽으면서 질문을 다시 던진다.💬 "공부는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 지식은 축적되지만, 사고는 삶을 움직인다지식은 외워 넣을 수 있다.하지만 사고는 ‘소화’해..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성장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물려주기아침부터 마음이 조금 어지러웠다.아이에게 아침밥을 먹이며, “얼른 씻고 옷 입자”라고 말한 순간아이의 표정이 살짝 굳는 걸 보았다.그걸 알아차린 후에도 나는 이미 굴러가기 시작한 말을 멈추지 못했다.“빨리 해야지, 시간이 늦어.”그 말이 나오는 순간 마음 한쪽이 찔렸다.말을 멈추고 싶었지만 그때의 나도 시간이 급했고, 조급했고,‘좋은 엄마는 부드럽게 말해야 한다는 기준’을 지키지 못한 자신이더욱 초조해져 목소리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불과 몇 분 뒤, 현관문 앞에서 신발끈을 묶다 말고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내가 잘못할 때마다 숨기는 게 과연 좋은 엄마일까?아니면, 부족하지만 배우고 있는 나를 보여주는 게 더 진실할까? 📍 ‘엄마니까 완벽해야 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하루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아침 7시 12분.일정표에는 분 단위로 계획이 적혀 있다.07:10 기상 → 07:15 아이 깨우기 → 07:20 아침 준비 → 07:45 등원 → 08:10 지하철 → 09:00 출근하지만 실제 현실은 늘 다르게 흘러간다.아이의 머리는 빗기 싫다고 흘러내리고,우유 컵은 순간의 부주의로 바닥에 떨어지고,출근 시간은 이미 붉은 숫자로 향하고,나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초조함을 느낀다.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계획표는 산산조각 난다.그리고 나는 자주 생각한다.나는 하루를 ‘살고’ 있는 걸까,아니면 하루를 ‘관리’하고 있는 걸까? 📍 우리는 왜 일정표에 매달릴까?우리는 계획된 하루를 사랑한다.예측 가능함은 안정감을 주고,순서대로 완수하는 ..
감정 정리와, 잃어가던 나의 존재감 다시 찾기밤 10시 37분.거실엔 아이 방에서 새어 나오는 약한 숨소리,식탁 위엔 미처 치우지 못한 컵 하나,그리고 나만 남은 조용한 시간.하루가 끝나고 이런 고요가 찾아오면,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나는 오늘 나로 살았는가?아니면 역할로만 하루를 통과했는가?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집에서 엄마로, 아내로, 딸로.하루 종일 ‘누군가의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정작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었는지 놓치기 쉽다.그래서 나는 하루를 정리하는 마지막 10분을나를 되찾는 시간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그 시간이 나에게 준 이름은, 철학 일기.✍ 왜 하필 ‘철학 일기’인가?보통 일기라 하면하루에 있었던 일, 기분 좋았던 순간, 짜증났던 이유 등을 적는다.하지만 철학 일기는 조금 다르다..
흔들리는 마음 위에 올려두는 한 줌의 고요아침 6시.눈을 뜨기도 전에 머릿속이 먼저 깨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오늘 해야 할 업무, 제출해야 할 서류, 아이 등원 준비, 냉장고 속의 반찬 상태, 회사 출근 시간 계산…몸이 침대에 붙어 있어도 마음은 이미 전력 질주 중이다.워킹맘의 하루는 늘 쫓기고, 이루어야 하고, 맞춰야 한다.긴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지쳐 있다.나는 한동안 이 피로를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좋은 엄마, 성실한 직장인, 무너지지 않는 사람.그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금쯤 힘든 것은 견뎌야 한다고 믿었다.그러나 어느 날 문득, 회사 컴퓨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를 발견했다.메일 앞에서 손가락이 멈추고, 점심 메뉴 하나도 고르기 힘들고,사소한 말에도 마음이 쉽게 ..
더 많은 ‘일’을 하기보다, 더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법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나는 오늘도 뭔가를 해내지 못하면 스스로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끼는 건 아닐까?할 일을 끝내야 마음이 놓이고,누군가의 인정이나 결과가 나와 하루의 평가 기준이 되고,쉬는 시간에도 “이러고 있어도 되나?”라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고.우리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했는가’가 사람이 된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나는 내가 해낸 성과를 나라고 착각하고,잠시 멈춰 있을 때조차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 실망하거나 초조해합니다.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나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그저 ‘존재하는 나’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사람일까?■ 성취 중심의 나 — 끝없이 달려왔던 시간우리는 오랜 세월 해내야만 존재 의미가 증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