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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부족해서 힘든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역할을 떠안고 있어서 힘들다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본 적 있는가.
생각보다 더 지쳐 있고, 눈빛엔 힘이 없고, 어깨는 늘려다 놓은 줄처럼 축 처져 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머릿속은 쉼 없이 돈다.
오늘 애기 책 읽혀야지.
숙제도 봐야 하고, 저녁 뭐하지… 반찬 남아있던가?
내일 발표자료도 손봐야 하는데…
아, 엄마한테 전화 못 드렸네.
영어학원 등록 알아봐야 했는데…
일하는 엄마의 피로는 단순한 ‘육체 피로’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구조적이며, 존재적이다.
우리는 회사에서 직장인, 집에서는 엄마, 때때로 아내, 딸, 며느리, 친구가 된다.
한 사람이 하루 안에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수차례 갈아입는다.
그리고 그 모든 역할을 “잘”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친 것이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역할이 과잉이기 때문에.

■ 1. 일하는 엄마의 하루는 ‘다중 탭 브라우저’다
회사에서는 일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 한 탭엔 아이가 있고,
또 다른 탭엔 집안일이 돌고,
다음 탭엔 학원 정보가 열려 있고,
마지막 탭엔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가 켜져 있다.
컴퓨터도 탭을 많이 열면 느려진다.
멈추거나 다운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멈추면 안 돼.”
“애는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내가 버텨야지.”
그러나 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라도
화면 50개 열어두면 열이 나고, 속도가 떨어진다.
사람도 똑같다.
엄마가 무너지는 이유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처리 중인 역할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2. 피로는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과잉’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워킹맘은 체력이 좋아야 해요.”
하지만 문제는 체력이 아니다.
✔ 체력이 아니라 주의력 과부하다.
✔ 기술 부족이 아니라 기대 과잉이다.
✔ 능력 부족이 아니라 역할 포화다.
엄마가 느끼는 무기력, 죄책감, 짜증, 정서적 번아웃은
능력의 실패가 아니라 역할 부담의 결과물이다.
- 직장인으로서 유능해야 하고
- 엄마로서는 따뜻해야 하고
- 아내로서는 다정해야 하고
- 딸로서는 효도해야 하고
- 집안의 매니저 역할까지 해야 한다
이런 요구를 다 충족시키는 존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친 것이 정상이다.
문제가 있는 것은 나가 아니라 기대치의 구조다.
■ 3. 역할 과잉은 두 가지 방식으로 번아웃을 만든다
1) 심리 압박
‘엄마 역할을 못한다’는 자책이 피로도를 심리적으로 증폭시킨다.
하나를 못 하면 열 개를 못 한 것처럼 마음은 무너진다.
2) 에너지 분산
하루가 같은 양의 시간을 가지더라도
역할이 많으면 에너지가 쪼개진다.
그래서 더 빨리 고갈되고, 더 쉽게 지친다.
아침엔 직장인, 오후엔 업무전사가 되었다가
퇴근하면 감정적 돌봄 노동자가 된다.
한 역할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역할이 덮쳐온다.
이 악순환이 번아웃의 본질이다.
■ 4. 그렇다면 해결은 ‘역할을 줄이는 것’일까?
아니다.
많은 워킹맘은 일을 그만둔다고 피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육아에만 집중해도
역할 과잉은 형태만 바뀔 뿐 본질은 남는다.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보다 핵심적인 해법은 역할 간 경계를 세우는 것이다.
회사에 있을 때는 회사에 있고
아이와 있을 때는 아이에게 있고
혼자 있을 때는 나에게 있는 것
경계가 생기면 역할은 줄어들지 않아도
내 정신은 과열되지 않는다.
■ 5. 역할 과잉을 다루는 5가지 철학적 방식
✦ 1) 하나의 역할만 ‘현재화’하기
돌봄 중엔 회사 일을 떠올리지 않고,
업무 중엔 죄책감에 끌려가지 않는 것.
마음이 한 곳에 머무는 순간, 피로는 내려앉는다.
✦ 2) ‘충분히 좋은 엄마’ 기준 세우기
완벽이 아니라 ‘적정치’를 목표로.
기준이 내려가야 실패가 줄어든다.
✦ 3) 일상의 루틴을 자동화하기
매일 고민하는 것은 에너지를 낭비한다.
정해놓은 삶은 마음을 가볍게 한다.
(예: 저녁 3일은 배달, 금요일은 가족 외식 등)
✦ 4) 감정 회복 시간을 양육에 포함시키기
휴식은 선택이 아니라 업무이며
돌봄엔 리셋 구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 5) ‘역할 정체성’보다 ‘존재 기반 정체성’으로 살기
나는 엄마이기 전에 한 인간이다.
역할은 옷이지 존재가 아니다.
존재를 기반으로 살면
역할은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입는 의미가 된다.
■ 결론
우리는 부족해서 힘든 게 아니다.
못해서 버거운 게 아니다.
게으르거나 약해서 지친 게 아니다.
우리는 그저
너무 많은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나는 노력하고 있고
나는 이미 충분히 해내고 있으며
나는 지칠 만큼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도 덧붙이자.
역할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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