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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말을 하게 되는가❞

우리는 설명한다.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것 같고, 침묵하면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일까 두렵기 때문이다. 상황이 복잡할수록,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말을 준비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그 선택이 불가피했는지, 왜 지금의 모습이 최선이었는지를 조심스럽게 엮어낸다.

설명은 성실함의 언어처럼 보인다. 설명을 하는 사람은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고, 설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회피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말하지 않는 대신 감당해야 할 평가를 견디기보다, 말로 상황을 정리하려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설명은 사실을 밝히는 일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 이해를 구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판단을 늦추거나 피하기 위한 방어로 바뀐다. 그 지점에서 설명은 조용히 변명의 얼굴을 갖는다.

이 글은 그 경계에 서 있다. 설명과 변명은 어디서 갈라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 선을 자주 넘는가.

1) 설명은 상황을 말하고, 변명은 나를 말한다

설명과 변명의 차이는 말의 길이나 논리의 정교함에 있지 않다. 그것은 말이 향하는 방향에 있다.

설명은 바깥을 향한다. 일어난 일의 구조를 드러내고, 맥락을 보여주며, 상대가 판단할 수 있는 재료를 남긴다. 반면 변명은 안쪽을 향한다. 사실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목적은 나에 대한 평가를 관리하는 데 있다.

같은 문장도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 “그때는 시간이 없었어요.”라는 말은 맥락을 설명하는 문장일 수도 있고, 책임을 가볍게 하려는 방어일 수도 있다. 차이는 문장에 있지 않다. 이 말을 내가 왜 하고 있는지, 이해를 위해서인지 보호를 위해서인지에 있다.

2) 설명이 많아질수록 핵심은 흐려진다

설명은 적정선을 넘는 순간 힘을 잃는다. 상황과 조건을 하나씩 나열하다 보면, 선택의 중심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상황에 떠밀린 사람, 어쩔 수 없이 반응한 사람으로 자신을 위치시킨다. 이때 설명은 사실을 드러내는 언어가 아니라, 선택의 흔적을 지우는 언어가 된다.

말이 길어질수록 책임은 얇아진다. 설명이 많다는 것은 종종 책임이 분산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3) 불안은 설명을 부른다

사람이 설명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불안 때문이다.

오해받을까 봐. 무능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을까 봐.

설명은 이 불안을 즉각적으로 완화해 준다. 말을 하고 나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책임을 다했다는 착각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가 묻지 않았는데도 먼저 설명한다.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스스로를 변호한다.

그러나 이 선제적 설명은 종종 변명의 출발점이 된다.

4) 아이 앞에서 설명은 쉽게 변명이 된다

부모는 아이에게 많은 것을 설명한다. 대부분은 보호와 배움이라는 선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수나 감정이 개입된 순간, 설명은 빠르게 변명의 형태를 띤다.

“엄마가 바빠서 그랬어.”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이 말들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의 정확성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책임지고 있는지다. 설명이 아이의 감정을 건너뛰고 상황만 정리할 때, 아이는 그 말을 책임으로 듣지 않는다.

아이에게 남는 것은 설명의 논리가 아니라, 책임을 대하는 태도다.

5) 짧은 인정이 긴 설명보다 무거울 때

모든 상황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짧은 인정이 긴 설명보다 더 책임 있는 태도가 된다.

“내가 잘못 판단했어.” “그 말은 불필요했어.” “네가 상처받을 만했어.”

이 문장들은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택의 주체를 분명히 드러낸다. 변명으로 흘러갈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차단하고, 결과를 감당하겠다는 태도를 남긴다.

설명을 줄이는 순간, 우리는 평가를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게 된다.

6)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의 오해

설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설명을 하지 않는 태도는 책임의 밀도를 높인다.

설명은 상대를 설득하려는 도구가 될 때 가장 빠르게 변명이 된다. 반대로 판단을 상대에게 맡긴 채 사실만을 남길 때, 설명은 설명으로 남는다.

말의 양이 아니라 말의 위치가 중요하다.

7) 설명을 내려놓을 때 드러나는 것들

설명을 줄이면 불안이 올라온다. 오해받을 가능성, 불리한 평가, 관계의 흔들림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그래서 설명을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불안을 견디는 동안, 우리는 중요한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이 말을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설명을 멈춘 자리에는 태도가 남는다. 말로 포장하지 않은 선택의 결과가 그대로 드러난다.

마무리: 설명은 줄이고, 책임은 늘리는 쪽으로

설명과 변명의 경계는 생각보다 가깝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그 선을 넘는다. 중요한 것은 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설명을 줄인다는 것은 침묵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평가를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겠다는 태도를 선택하는 일이다.

관계는 완벽한 설명 위에서 자라지 않는다. 책임 있는 태도 위에서 자란다. 말로 자신을 지키기보다, 행동으로 신뢰를 쌓는 쪽을 선택할 때, 설명과 변명의 경계는 조금 더 분명해진다.

 

설명과 변명의 경계에서
설명과 변명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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