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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함께 다뤄야 할 신호다❞

아이를 키우며 어른은 자주 불안을 느낀다.
이 선택이 맞는지, 지금 이 속도가 너무 느린 건 아닌지, 혹시 아이가 뒤처지지는 않을지.
그리고 우리는 이 불안을 아이에게서도 본다.
낯선 상황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 실패를 앞두고 주저하는 표정, 확신 없이 묻는 질문들.
그래서 어른은 서둘러 불안을 없애주고 싶어진다.
괜찮다고 말하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다독이며, 불안을 느낄 틈 없이 답과 길을 제시한다.
하지만 불안을 없애려는 양육은, 아이에게 중요한 하나를 놓치게 만든다.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힘이다.
이 글은 불안을 제거하려 하지 않을 때, 아이 안에서 어떤 힘이 자라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1) 불안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위험과 가능성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우리는 불안을 흔히 약함으로 해석한다.
겁이 많다, 자신감이 없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말로 정리한다.
이 해석 속에서 아이는 배운다.
불안을 느끼는 나는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불안을 없애려는 시도는, 불안을 느끼는 자신을 부정하게 만든다.
2) 불안을 빨리 진정시키려는 말의 위험
어른은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말한다.
“괜찮아.”
“아무 일도 안 생겨.”
“걱정할 필요 없어.”
이 말들은 선의에서 나온다.
하지만 아이의 경험과 어긋날 때, 이 말은 아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아이의 몸은 긴장하고 있는데, 어른은 괜찮다고 말한다.
이 불일치는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감각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3) 불안을 설명으로 덮어버릴 때
어른은 불안을 이해시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유를 설명하고, 확률을 계산하고, 논리로 설득한다.
하지만 설명은 때로 불안을 사라지게 하지 못한 채, 아이를 더 외롭게 만든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
이때 아이는 느낀다.
이 불안은 말할수록 틀린 것이 되는구나.
4) 불안을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
불안은 즉각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조금씩 낮아지고, 다시 올라오고, 또 가라앉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시간을 건너뛰게 하면, 아이는 불안을 통과해 본 경험을 갖지 못한다.
불안을 없애주는 어른 곁에서 자란 아이는, 혼자 불안을 만났을 때 더 크게 흔들린다.
불안을 견디는 힘은, 불안이 있는 상태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기억에서 자란다.
5) 어른의 불안을 아이에게 전가하지 않을 때
아이의 불안은 종종 어른의 불안을 비춘다.
아이보다 어른이 더 불안해하며, 그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를 재촉한다.
빨리 결정하라고,
망설이지 말라고,
확실한 선택을 하라고.
이 재촉은 불안을 줄이기보다 키운다.
불안 속에서 머무를 여유를 빼앗기 때문이다.
6) 불안을 말할 수 있는 공간
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는 양육은, 불안을 그대로 두는 방치가 아니다.
불안을 말해도 괜찮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불안하구나.”
“지금 많이 긴장됐겠네.”
이 말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중요한 메시지다.
불안을 느껴도 관계는 안전하다는 신호.
7) 불안을 안고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경험
불안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선택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대부분의 중요한 선택은 불안과 함께 이루어진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이 없는 선택이 아니라,
불안을 안고도 움직여 본 경험이다.
작은 시도,
완벽하지 않은 결정,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관계.
이 경험이 쌓일수록 불안은 줄어들지 않아도, 다룰 수 있는 감정이 된다.
마무리: 불안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는 양육은, 아이를 불안 속에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불안이 있어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해주는 일이다.
불안은 사라져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등장하는 신호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 없는 인생이 아니라,
불안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이다.
그 감각은 언제나,
불안을 견뎌주는 어른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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